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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님의 복

우리는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 라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예수를 믿으면 사업이 번창하고 돈을 벌고 승진하고, 안 되는 일이 된다고 한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이 말이 정말로 성경적인 내용인가 늘 궁금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복을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찾아보고 싶었다. 신약 성경 중 요한복음 6장에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서 성경적인 복에 대해 알아보았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예수님이 군중을 향해 하신 말씀이 있으셨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의 군중을 먹이신 일, 그 역사적 기적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다. 한마디로 말하면 부흥이 일어 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예수님은 흥을 깨는 이야기를 하셨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Sign)을 보고 온 것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불러서 왔다고 하셨다(요한복음 6장 26절). 그 후 진리를 말씀하시기 시작하셨는데, 군중도 떠나고 제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탈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필요(Needs)를 채워 주지 않으셨다. 그래서 그들은 떠났다.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도 떠나려고 하냐”고 물으시니 베드로가 “영생의 말씀이 여기에 계신데 어디로 가겠냐”고 대답한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면 뭔가 자신에게 이익이 생기거나 유리하다고 믿고 하나님께로 나아간다.

인생을 살다가 문제가 있고 해결할 방법이 없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만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일이다. 열왕기서, 역대기서에 보면 그렇게도 선지자들이 산당을 제거하려고 했으나 산당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도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주신 복을 하나님보다 더 우선시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하나님 앞에 신실했던 이스라엘 왕들도 산당을 제거 하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새로운 왕이 등장할 때 마다 성경은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이 아닌 산당에서 하나님을 찾았다고 기록했다. 그것은 그 시대 이스라엘 사회의 신앙적, 사회적인 문제였었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주셨지만, 솔로몬의 산당, 사람들이 선호하는 일천번제의 그 산당, 지혜와 부귀를 주신 그 산당을 바랬는지 모른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주신 백성을 다스릴 지혜를 구했다. 부가적으로 부는 따라 왔다. 부 혹은 명예, 성공은 부가적인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솔로몬이 기도 응답을 받은 것은 번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을 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솔로몬의 산당, 부귀를 주는 그 산당을 통해 하나님을 찾았다.

성경에 있는 내용과 이야기로 채워졌다고 해서 그것이 꼭 성경적인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방법이나 목적이 성경적이어야 비로소 성경적인 내용이 되는 것이다. 교회도 세상의 유행을 따라 긍정적 사고, 긍정 심리학의 영향을 받아 친밀한 하나님, 나를 도와주시는 하나님,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만을 강조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성도들도 긍정과 성공을 이야기하는 설교만을 원하지는 않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복은 죄를 짓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우리의 무능력을 해결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이다. 죄인된 신분에서 의롭지 않지만 의롭다함을 입는 그것이 하나님의 복이다. 올바르지 않은 세상과 나, 그것이 하나님의 의로우심으로 의로운 길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 복이다.

성경적인 복은 잘못된 것을 보고 양심의 죄책감을 느낄 수 있는 마음, 거짓된 세상과 부패한 마음을 가진 내가 진리를 깨달아 알 수 있게 되는 상태이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새로운 피조물, 죄에 대한 죽은 상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것, 그 분의 의로 나를 옷 입혀 주신 것으로 표현했다. 진리를 알게 되는 것, 의로울 수 없는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그것이 복이다. 주님께서 나를 아는 것이 복이다. 그리고 주님을 알 수도 없던 내가 그 분을 알아 가는 것이다. 내 모든 가치관과 목표와 이념과 사상보다 더 하나님 말씀이 우선시 되는 것이 복이다. 진리를 사모하게 되는 것,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좋아 하게 되는 것, 진리의 말씀을 묵상하고 좋아하게 되고 그 말씀대로 살고 싶은 것, 그래서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 내 마음대로 표현하고 싶은 것, 사람들의 평가나 평판들이 의미 없어지고 오로지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을 하고 싶어서 자신을 절제하게 되는 상태이다. 무엇보다 죄인 된 신분으로 거룩하신 하나님과는 아무런 무관한 자, 성경적으로 따지면 유대인도 사마리아인도 아닌 이방인인 신분에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양자된 신분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아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하루하루를 그분의 뜻을 소망하고 실천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이다. 거기에 따른 부와 명예가 있을 수도 있고 혹은 고난이 있을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이 여길 자를 긍휼이 여기신다. 물질적인 축복 혹은 성공을 허락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며, 그분이 내리실 결정사항이다. 비전을 가장한 자신의 열망만을 구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강지웅(designm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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